철학콘서트

@codemaru · August 22, 2007 · 5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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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을 것 같은 이 책. 보기보다 상당히 재밌습니다. 저자가 꽤나 코믹하게 이야기를 잘 풀어나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치 할아버지한테 옛날 이야기를 듣는 느낌입니다. 여러 명의 철학자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씩 나오는데 저마다 다들 인상깊고 감동적입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특히 퇴계편에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진리 앞에 겸허한 학자라는 말이 정말 어울리더군요. 아래는 제가 그런 생각을 갖게된 책의 중요 부분들입니다.

조선 선비의 사부인 퇴계는 26년 연하인 고봉에게 깍듯이 존대한다. 나이 60, 이순을 바라보는 대학자가 이제 나이 이립을 갓 넘어선 젊은 후학에게 깍듯한 예를 다하여 존대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충격적이다. 퇴계는 고봉을 존중했고, 그에 따르는 예의를 다한 것이다. 장장 13년에 걸친 사단칠정의 논변. 안동에 사는 스승과 광주에 사는 제자가 그것도 편지로 논변을 이은 것이다.

"<<성학십도>>를 보냅니다. 잘못된 곳이 있으면 가리켜 논박한 뒤 돌려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일단은 다른 사람 눈에 띄게 하지 마십시오."
"영공에게 절하며 사례합니다. 그대의 가르침을 받으니 감격스럽고 다행스러웠습니다. 고증이 소홀했던 부분들을 깨우쳐주시니 저로서는 깊이 다행스럽다고 여겼습니다."

퇴계는 마음을 다 열어 제자들의 조언을 구한 분이었다. 참으로 진리 앞에 겸허한 대학자이다. <<성학십도>>는 퇴계가 평생 걸려 완성하는 성리학 작품. 왕에게 바치는 지성으로 작성한 이 <<성학십도>>의 초고에 대해 퇴계는 제자 고봉에게 정정을 부탁한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사단칠정 논변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을까? 퇴계는 제자의 논변이 논리적으로 옳다는 것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고봉의 논리를 있는 그대로 다 수용하면 성리학의 토대가 무너진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고봉이 논리적으로 우수하나, 세상을 아우르는 지혜가 부족함을 스승은 안타까이 생각했을 것이다. 퇴계는 고봉이 진정한 인격자, 원숙한 정치가로 성장하길 바랐을 것이다. 72세의 나이로 퇴계가 세상을 뜨자, 아직 살날이 많은 고봉도 이어 숨을 거둔다.

"지금까지 '사물의 이치에 이른다.'와 '무극이면서 태극이다.'에 대한 저의 견해는 모두 잘못되었습니다."
퇴계가 죽기 전 고봉에게 보낸 편지이다. 우리로서는 도무지 다가설 수 없는 경지이다.

자신보다 어린 사람을 깎듯이 대하는 것이나, 어린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지식에 대해서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나, 자신의 틀린점을 상대에게 고백하는 것이나 한 가지도 쉬운게 없습니다. 특히나 자신이 소위 잘나가는 권위자인 경우에는 정말 낙타가 바늘 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분. 퇴계 선생님은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정말 마지막에 잘못되었습니다. 저 문장을 읽을때는 가슴에 전율이 오더군요. 정말 범인인 우리로서는 도무지 다가설 수 없는 경지라는 말에 백번 공감이 갑니다.

@code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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