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에 관하여...

@codemaru · October 01, 2007 · 14 min read

저의 요즘의 화두는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종종 주변 사람들과 만날 일이 있으면 꼭 물어보곤 했습니다. 요즘 고민이 무엇인지 말이죠. 그 사람의 고민을 듣다보면 그 사람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도 알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살면서 느낀 고민의 두 가지 재미난 특징은 연속성과 심각성이었습니다. 연속성이란 고민은 끊임없이 계속해서 나타난다는 것 입니다. 이 고민만 해결하면 끝날것 같지만 그 고민을 해결하면 새로운 고민이 저절로 찾아온다는 것이죠. 그래서 전 종종 인생은 고민의 연속이 아닐까? 란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심각성이란 과거 어떤 고민보다 지금 하고 있는 고민이 더 심각하다는 것 입니다. 과거에 했던 고민을 떠올려보면 정말 고민같지도 않은 고민이 많이 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지금의 고민은 정말 심각하죠. 하지만 그것도 미래에 올 고민에 비하면 정말 사소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두 가지 특성에 기인해서 생각해 본다면, "하나님, 부처님 이 고민만 해결해 주신다면 앞으론 열심히 살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 없는 짓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나의 고민
제가 한창 했던 고민은 가치 평가(valuation)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과연 고객들은 어떤 가치에 기꺼이 금액을 지불할까?'와 같은 것이었죠. 좀 더 구체적으론 '고객이 지불할만한 가치가 있는 서비스는 어떤 것들일까?'가 되겠죠. 김창준님의 글을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고객에게 매일 가치를 전하라." 좋은 말임엔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정작 진짜 문제는 그 글에도 나와 있듯이 그 가치가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 입니다. 즉, 가치를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은 다들 하고 있지만 어떤 가치를 전달해야 할지를 모르는 경우죠. 내지는 자신이 가치라고 전달한 것을 고객은 가치라고 인정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가치 중에서도 제대로 평가 받을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하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죠. 안타깝게도 아직 이 문제에 대한 답을 찾진 못했습니다. ㅠㅠ

선배의 고민
대학교 선배 중에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형이 있습니다. 아마 제 인생에 부모님 다음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사람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없이 그 형을 말할겁니다. 물론 저 말고도 그 형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그렇게 이야기할 겁니다. 그만큼 후배들에게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귀감이 되는 선배였죠. 지금은 미국에 있어서 자주 볼 수는 없지만 종종 메일로 안부를 묻곤 합니다.

근래에 메일을 보냈었는데 어김없이 고민이 뭔지를 물어봤습니다. 사실 전 형의 고민을 한번도 들어본적도 물어본적도 없었거든요. 이런거 물어보는게 좀 웃기긴 하죠. 근데 제법 근사한 답변이 와서 메일의 일부를 발췌해서 올려봅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해야 하는 고민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긴 합니다. 빌게이츠를 박애주의자라고 한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더군요. 형이 프로그래밍도 굉장히 잘하긴 하는데 주로 BSD 환경과 유닉스 계통에서 많이 작업을 했고, 전공은 칩 설계 쪽입니다. 글 중에 밀물에 관한 이야기도 참 공감이 가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형은 요즘 고민 없으세요???
그러고 보니 전 한번도 형 고민을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맨날 제 고민만 이야기 하는 것 같죠. ㅋㅋ

당연히 많지 ^^
당장 저녁때는 무얼 먹을까 하는 것 부터
오늘 집에 전화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어떻게 살아야할까? 무엇이 행복일까? 이런 배부른 고민까지
때로는 나는 성격이 왜 이럴까 하는 지극히 개인적인 고민도 하고
내가 무엇을 해야할까? 나는 지금 어떤 위치에 있는가?
누구를 위해서 일을 해야할까? 그리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런 아주 단순한 어떻게 보면 바보같은 고민이 나한테는 좀 무거워.

그리고 세상은 평등하지 않은 곳이고 그런 불평등을 보고만 있는 내가 황당하고, 내가 무얼 할 수 있는가 생각하면 초라하기만해. 플로리다로 가는 버스안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 자기 아들이 잠수함에서 무선설비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라고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70대의 흑인할아버지, 니클백이라는 밴드의 리드기타인데 일이 꼬여서 감옥에 있었다는 아저씨, 엘살바드로에서 가족을 두고 돈벌기 위해 버지니아에서 지붕만드는 일을 한다는 목공기술자, 일이 잘 안풀려서 가난한 브라질 모델 등, 버스를 타고 다른 주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여유롭지가 않아보였어.

비행기 자리가 없어서 버스를 탈 수 밖에 없었다는 정신이상자를 치료하는 정부의료기관에 일하는 프랑스계 미국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미국은 사회적인 불만이 만다고 그러더라고. 신문의 설문이나 여론 조사는 대부분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연간소득 8천8백불 이하의 극빈자로 정의되는 인구가 38% 정도된다고. 5% 의 상위 소득자들이 60% 이상의 자본을 가지고 있다고. 물론 그 형의 말이 언제 통계자료이고 어디가 근거인지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미국도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처럼 소수의 상위가 대부분의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부의 불균형이 이루어져 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었어.

극빈자들이 마약, 범죄, 매춘 등으로 쉽게 빠져드는 일이나, 상위계층의 사람들은 한끼에 20만원하는 식당에서 음식을 남기는 현상을 나쁘게만은 볼 수는 없어. 가난한 사람들의 게으름이나 부자들의 자만심이 다 좋지 않으니까. 그리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들 보다 더 행복할 수도 있고,그들 스스로가 아니면 결국 달라지지 않을 테니까.

공산주의나 빌게이트같은 박애주의자는 극단적인 불행을 막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는 점에서는 아름답지만, 사람들을 진정 행복하게 하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주위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지 않을까? 모래성이 허물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밀려오는 썰물을 아무리 큰 삽으로 퍼내어도 그것은 일시적일 뿐, 지구가 스스로 돌아서 밀물이 되지 않으면 않되는 처럼. 그래서 나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 행복하지만 동시에 책임감을 느껴. 무엇보다 내가 평생 책임져야하는 동생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것이 해결해야할 나의 가장 중요한 문제이고 고민이야. 나머지 고민들은 주어진 시간과 내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뿐이야.

그리고 내가 두려운 것은 주위의 특권의식을 가진 사람들이야. 스스로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버스를 타는 사람들이나 식당의 종업원을 벌레보듯 생각하는 엘리트 의식에 빠진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의식에 동화될어 버릴까 불안해. 주로 경영대학원 사람들이나 잘사는 학부생들이 그런 생각이 많아. 나처럼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아주 불쌍하게 바라보거든. 이공계 학생들도 정말 아주 똑똑한 애들은 금융이나 컨설팅으로 대부분 많이 빠지는데, 30대가 되기 전에 우리나라 대기업 이사정도로 돈도 많이 벌고 잘 살지만, 이전 내 룸메이트처럼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인 얘들로 있거든. 그렇게 스스로 똑똑하고 돈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특권의식에 젖어들지 모른 다는 것이 무서워. 그래서 사람들과 만나면 항상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많이 노력해. 같이 일은 해야하니까. 누구한테서나 배울 점이 많지만 배우지 않아야 할 점도 많고 그래서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것은 즐겁지만 조심스러워 이것도 고민이야.

다른 사람들의 고민??
여러분은 요즘 고민이 있으신가요? 있다면 무엇인가요? 앞서 말했던 고민의 두 가지 특성인 연속성과 심각성 외에도 두 가지 특성이 더 있습니다. 우연성과 공개성이 그것인데요, 우연성이란 고민은 항상 심각하게 생각하는 과정보다는 우연한 일에 의해서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고, 공개성이란 공개된 고민이 그렇지 않은 고민보다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오픈 소스가 그렇지 않은 프로그램보다 버그나 보안 결함이 낮은 것과 같은 원리죠.

고민을 한다는 것. 어쩌면 그건 우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고민한다 고로 나는 살아있다??

@code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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