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codemaru · December 18, 2008 · 6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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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이었던 것 같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라는 글을 인터넷에서 보게 되었다. 글이 참 인상적이었던지 예전에 잠시 했던 이글루에도 글을 퍼다 올려 두었다. 맘에 드는 글이라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검색해 보았는데 드라마 작가라 했다. 에세이 집은 쓰지 않는다 했다. 아쉬웠다.

몇 년이 지났다. 집에 놀러 온 녀석이 본다는 "그들이 사는 세상", 내가 좋아할 법한 드라마는 아니었다. 두 편을 보았는데 한 편에 혜교씨 나레이션이 있었다. "화이트아웃 현상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라고 시작하는 나레이션 내용이 제법 맘에 들었다. 작가가 노희경이라 했다. 그랬던 그녀가 이번에 에세이 집을 전격 출간했다. 법정 스님의 수필집이 나왔을 때도 사야지 하고 맘만 먹고 있었는데, 과감하게 질러 보았다. ㅋ

화이트아웃 현상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

그런데 이번엔 미련하게도 나는 그에게 너무 많은 역할을 주었다. 그게 잘못이다. 그는 나의 애인이었고, 내 인생의 멘토였고, 내가 가야 할 길을 먼저 가는 선배였고, 우상이었고, 삶의 지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욕조에 떨어지는 물보다 더 따뜻했다. 이건 분명한 배신이다.

그 때, 그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들, 그와 헤어진 게 너무도 다행인 몇 가지 이유들이 생각난 건 정말 고마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와 헤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고작 두어 가진데, 그와 헤어져선 안 되는 이유들은 왜 이렇게 셀 수도 없이 무차별 폭격처럼 쏟아지는 건가.

이렇게 외로울 때 친구를 불러 도움을 받는 것조차 그에게서 배웠는데, 친구 앞에선 한없이 초라해지고, 작아져도 된다는 것도 그에게서 배웠는데, 날 이렇게 작고 약하게 만들어놓고, 그가 잔인하게 떠났다.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담은 글들이 몇 편 있었는데, 불효를 많이 해서 그런지 심히 공감이 갔다. 특히나 아래 부분을 읽으면서는 조금 반성 했다. '잘해야지' 하는 다짐도 했다. 다시 태어나도 성여사의 막내 아들을 하고 싶을 만큼 훌륭한 부모님이시지만 아마 부모님은 싫어하겠지 ㅋㅋㅋ~

... 아픈 기억은 많을 수록 좋다는 내용들 ...

하지만 이런 생각을 갖는 내게도 후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 살아 계실 때 밥벌이하는 모습이라도 보여드렸다면 좋았을 것을. 지금, 방황하는 사람들, 그대들의 방황은 정녕 옳은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어머니가 살아 있는 그 시기 안에서 부디 방황을 멈추라. 아픈 기억이 아무리 삶의 자양분이 된다 해도, 부모에 대한 불효만은 할 게 아니다.

10년을 두고 다시 쓴 글이 하나 있었다. "드라마는 왜 꼭 재미있어야 하나?"라는 제목의 글로 이것도 예전에 인터넷에서 본 기억이 있었다. 물론 10년 후에 다시 쓴 부분에 대해서는 못 읽었었지만. 10년이란 시간은 그녀를 조금은 겸손하게, 조금은 유하게 만든 듯 싶었다. 나이가 들면 겸손해지고, 온화해지고, 사려 깊어 진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었단 생각이 들게 하는 부분이었다. '10년 후에 내가 쓴 글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프로그래머 적인 입장에서 10년 전에 내가 쓴 코드들을 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을 때가 있다. 물론 꼭 10년이란 시간 때문만은 아니다. 어제 쓴 코드도 어처구니 없을 때가 있으니... ㅋㅋㅋ~

제법 오랜 기간 틈틈이 써 둔 것을 모아둔 것인데도, 아껴보고 싶을 만큼 몇 편 안 되는 에세이가 아쉬웠다.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노희경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됐고, 조금은 공감을 했고, 조금은 위로를 받았다. 영롱한 표현이 넘치는 그녀의 글은 읽는 내내 독자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또한 그녀의 당돌한 문체는 읽는 사람들에게 힘을 준다. 마치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한 알의 아스피린과 같은 책이었다...

@code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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