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May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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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투를 빈다, 김어준


건투를 빈다, 김어준
by 신영진(YoungJin Shin), codewiz at gmail.com, @codemaru, http://www.jiniya.net

나이 들어 가장 비참할 땐 결정이 잘못됐다는 걸 알았을 때가 아니라 그때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했단 걸 깨달았을 때다.


한 가지는 냉정히 인정하자. 아이디어는 사업이 아니다. 사업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가장 큰 착각이 바로 그거다. 아이디어가 사업이 되기 위해선 수많은 장애를 넘어야 한다. 첫 번째 장애이자 초짜 대부분을 주저앉게 만드는 건 자본. 아이디어 하나로 손쉽게 자본을 모을 거라 여기는 건 사업을 해보지 않은 자들의 공통된 착각 중 하나다.

그러나 설사 자본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그 자본도 결코 사업이 아니다. 자본은 반드시 소진된다. 처음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자본이 소진되는 속도는 공포다. 언제나 예상한 것보다 비용은 더 들고 수입은 예상치를 밑돌기 마련이니까. 그게 사업의 이치다. 당연하다. 시장에 갓 등장한 신참을 누가 주목하겠나. 아무리 아이템이 좋아도 시간이 소요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실은 자본 소진을 막아줄, 계약조차 사업이 아니다. 계약과 입금은 또 다른 거다. 사업을 하게 되면 계약에서 입금까지 얼마나 먼 거리인지 알게 된다. 통장에 돈이 찍혀 출금하기 직전까진 결코 내 돈이 아니다. 그리고 그런 입금이 안정적으로 지속되게 하는 건 또 다른 문제고. 최소한 6개월은 안정적으로 입금이 찍혀야 비로소 사업이라 할 만한 게 겨우 시작된 거다.

그러니 만약 앞으로 정말 사업가가 될 생각이라면, 친구의 사업 시작을 오히려 남의 돈으로 공부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받아들이시라. 그 친구에게 부탁해 참여 기회를 잡으시라. 피해의식은 버리시라. 만약 그러는 게 고개 숙이는 것 같고 자존심 상해 도저히 못 하겠다면, 그런 마인드라면, 당신은 사업 같은 건 안 하는 게 낫겠다. 아무리 작은 사업도 그 정도 고새 숙이는 것보다 백만 배는 더 어려운 거니까.


더구나 단위시간 내의 생산성이나 속도로만 승부가 나지 않은 일은 앞으로 얼마든지 있다. 기죽지 말고, 스트레스 받지 말고, 감정지수, 창의력, 자신만의 복합적 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하시라. 아떻게? 사회적 관계를 확대하고 시대의 맥을 놓치지 말고 인간 심리의 본질을 탐구하고 크로스컬처한 경험을 축적하시라. 그러니까 사람 두루두루 사귀고 문화 경험 많이 하고 연애 많이 하고 여행 많이 가란 소리다.


이번 기회에 스스로 친구를 위해 내가 손해 볼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따져보시라. 자신의 바닥이 어딘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이 지불할 수 있는 비용은 어디까진가.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고? 그럼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거다.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건 삶에 대한 응석에 불과하다.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가 아니라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자존감이란 그런 거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부족하고 결핍되고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다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거. 그 지점에 도달한 후엔 더 이상 타인에게 날 입증하기 위해 쓸데없는 힘을 낭비하지 않게 된다. 누구의 승인도 기다리지 않고 그저 자신이 하고 싶고, 재밌어하는 것에만 집중하게 된다. 다른 사람 역시 어떤 왜곡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허망해질 땐, 하나도 이룬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다.


꿈이니 야망이니 거창한 단어에 주눅 들거나 현혹되거나 지배당하지 말고, 그저 자신이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 가보고 싶은 곳들, 만나보고 싶은 자들 따위의 리스트를 만들라. 그리고 그 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라. 사람이 왜 사느냐. 그 리스트를 지워가며 삶의 코너 코너에서 닥쳐오는 놀라움과 즐거움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최대한 만끽하려 산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건투를 빈다.

– 건투를 빈다, 김어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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