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23

@codemaru · May 24, 2010 · 9 min read

#0.

언젠가 술을 마시다 설악산 가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21일날 가자고 철썩같이 술을 마시며 약속을 했었다. 늘 약속은 깨지고, 계획은 축소되기 마련이다. 결국 약속 당사자는 빠지고 다른 사람과 둘이서 관악산엘 가게 되었다. 관악산은 2004년에 한 번 가보고 두 번째로 가보는 곳이다. 6년이란 세월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건만 그 때랑은 정말 느낌이 너무나 달랐다. 아마 다른 코스로 가서 그런 느낌이 더했던 것 같다. 서울대입구에서 연주대를 올라가는 코스로 등산을 했는데 깔딱고개에서 진짜 깔딱 숨넘어 갈 뻔 했다. 10분 가다 쉬고, 5분 가다 쉬고, 옆에 쌩쌩하게 올라가시는 아저씨, 아줌마, 꼬꼬마들을 보면서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저질오브저질 체력이란… ㅋㅋ~ 죽다 살아나서 겨우겨우 연주대까지 오르긴 올랐다. 고생해서 그런지 정상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제법 감탄스러웠다. 물론 정상에 올랐다는 작은 성취감도 있었다.

연주대 밑에 있는 연주암을 들렸다. 석가탄신일이라 그런지 행사품목들이 많다. 예전에 어머니께서 우리 이름을 써서 연등을 달던 때가 생각났다. 절을 가기 싫어 엄마와 무진 싸우면서 가곤 했던 그 곳. 연등은 차마 비싸서 달지 못하고 조그만 초를 사서 부모님 건강하게 해달란 소원을 빌었다. 부모님이 나를 위해 소원을 빌던 곳에서, 내가 그 분들을 위한 소원을 빌고 있다고 생각하니 세월이 참 무상하게 느껴진다. 절밥을 먹고, 절간 대청 기둥에 앉아서 시간을 좀 보내고 있노라니 정말 평화롭기 그지 없다. 사람 사는 게 별 거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총총히 달려있는 연등에 불들이 환하게 들어오는 장면을 눈에 담아 돌아오고 싶었으나, 8시에 켜진다는 보살님의 말을 듣고는 과감하게 접었다.

하산 코스는 과천쪽으로 향했다. 차마 그 올라온 깔딱고개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험하기도 험한데 물에서 놀다온 사람들이 많아서 돌이 상당히 미끄러웠기 때문이었다. 과천쪽으로 향하는 길은 평탄하기 그지 없었다. 올라온 길에 비하자면 그냥 계단이었다. 과천으로 내려와서는 다시 한 번 놀랐다. 너무 살고 싶게 만들어 놨다고나 할까? 공원 그런 것들이 정말 멋있게 되어 있었다.  다음 번 이사는 반드시 경기도로 가리라 다짐했다. 서울은 사람 살 때가 아니라는 나의 믿음에 다시 한 번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상하게 밤에 잠이 잘 오지 않아 새벽녘에나 자곤 했는데, 몸이 피곤하니 정신 상태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떡실신한 육체에 막걸리 한 잔이 더해지니 그냥 쓰러졌다. 12시간을 정말 송장처럼 자버렸다.

#1.

누나 결혼식날 간만에 만난 사촌 동생이 묻는다. 서울 살이는 괜찮은지, 혼자 살면 안심심한지 말이다. 그래서 내가 대답해줬다. 혼자 사는건 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일이라고 말이다. 새벽 2시에 눈치 보지 않고 라면도 끓여 먹을 수 있고, 밤새도록 TV를 봐도 아무도 머라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어쨌든 나는 혼자 사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집안 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빨래, 청소, 설거지는 정말 3대 악재다.

오늘 건조대에 널어둔 빨래를 개려고 침대로 이동 시키면서 문득 그 장면이 떠올랐다. 예전에 “빅뱅 이론”에서 쉘든이 세탁실에서 빨래를 개던 그 장면 말이다. 빨래를 올리고 탁,탁,탁 끝, 올리고 탁,탁,탁 끝. 그래서 검색을 했다. 역시나. ㅋㅋㅋ~ 단돈 5000원만 투자하면 살 수 있는 클로즈 폴더(clothes folder)라는 것이 있었다. 당장 주문했다. 기대된다.

#2.

성공한 아이폰 뒤에는 스티브 잡스의 스토리가, 김연아 뒤에도 무수히 많은 스토리가 있다. 요즘은 흔히 스토리가 돈을 버는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에는 죄다 스토리를 붙여서 광고를 한다. 어제는 온게임넷 결승전이 있었다. 현재 완성형 테란이라 불리는 이영호와 지옥에서 살아 돌아왔다는 저그 김정우가 붙었다. 이영호의 우승에는 최연소 골든 마우스라는 이야기가, 김정우의 우승에는 나락까지 떨어졌다 다시 살아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붙어졌다. 그걸 반증이라도 하듯이 2:0 스코어에서 김정우가 내리 세 판을 이겨 역전승을 해버렸다. 경기는 5경기 모두 시시했는데 김정우의 재재재경기 스토리를 듣고나니 나름 뭉클해졌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의 이영호의 여유로운 인터뷰 내용도 마음에 들었다. 역시 난놈은 다르다는 생각. ㅋ~

언젠가 남자의 자격에 나온 김국진이 그랬던가 골이 깊은 만큼 산도 높은 법이라고, 나락까지 떨어져봐야 정상까지 갈 수 있다던 그의 롤러코스터 이야기가 떠올랐다. 사람 사는게 다 그런거 아닐까? ㅎㅎ~

#3.

나는 백만장자를, 자기 자본을 가지고 자기가 원하는 바를 행하는데 있어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는 애써 일할 필요가 없으며 사장이나 고객에게 굽실거릴 필요도 없다. 또한 자기와 맞지 않는 것에 맞추어 가며 살아야 하는 불편함 없이 달리 자신의 호사스러움을 즐길 수 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진정한 백만장자이다.

앙드레 코스톨라니, “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p27

가끔 먹고살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을 느낄 때마다 갑갑함이 몰려온다. 그럴 때마다 드는 생각. 그런 것에 내몰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면 얼마나 좋을까? 매일 아침 똑같은 시간에 사람들이 일어나 볼일을 보고, 씻고, 밥을 먹고, 차를 타고, 회사로 간다고 생각하면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그게 과연 정답인 걸까?

@codemaru
돌아보니 좋은 날도 있었고, 나쁜 날도 있었다. 그런 나의 모든 소소한 일상과 배움을 기록한다. 여기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한 개인의 관점이고 의견이다. 내가 속한 조직과는 1도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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