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Jun
2015
Posted in: 양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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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에 관한 발칙한 생각


여유에 관한 발칙한 생각
by 신영진(YoungJin Shin), codewiz at gmail.com, @codemaru, http://www.jiniya.net

Let it be

#0
회사 직원과 둘이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 왈 요즘은 너무 여유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도 그럴것이 인원은 한정돼 있고 사이트는 계속 늘어나니 예전엔 조금씩 있던 여유가 지금은 한톨도 없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도 여유가 없으니 당장 코앞에 벌어진 일만 할 수 밖에 없다는 푸념을 했다. 조곤 조곤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많이 공감이 갔다. 단지 시키는 입장에서는 왜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냐고 닥달하기 쉽지만 직접 일을 하는 입장에는 사소한 거 하나를 처리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리는 게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왜 못했나 싶었다. 난 메모리 액세스 속도를 기대했는데 사실 I/O는 SSD도 아닌 하드디스크도 아닌 플로피디스크였던 것이다. 섹터 찾는데도 시간이 걸리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

여유가 많이 없어졌군. 이런 생각을 하면서 회사로 복귀했다.

#1
저녁 무렵. 집 근처에 사는 후배 녀석을 만났다. 집 앞 콤마라는 커피숍에 앉아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녀석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의료 정보쪽 회사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데 일이 쉽지가 않은 것이다. 사실은 회사 정책을 탐탁치 않아 하는 분위기 였다. 그 회사는 규모도 크고 매출도 제법 되는 회산데 회사에서 후배가 하는 프로젝트에 돈을 쓰기 보다는 다른 신사업에 돈을 쏟아 붓는다는 것이었다. 현재 그 회사의 캐시카우는 후배가 하는 프로젝트임에도 말이다.

그래서 난 그런 말을 했다. 경영자가 미래 사업 방향을 그 신사업으로 정했다면 그건 어느 정도 납득이 되는 이야긴거 같다고. 그래서 진짜 네가 힘든게 뭐냐고 물었더니 회사 직원과 똑같은 이야기를 한다.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건 뽑아 먹어도 적당히 뽑아 먹어야 하는데 정말 토나오는 상황이라는게 그 친구의 말. 예를들면 이런 식이었다. 그 친구가 일주일에 통상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레드마인 이슈가 10개라면 의욕도 있고 회사에서 어느 정도 인정도 받고 있어서 15개 정도를 처리하겠다고 열심히 하는데 그 중간 중간에 하나도 아니고 시도 때도 없이 인터럽트와 추가 이슈가 들어온다는 이야기였다.

듣고 있는데 참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점심 때 그런 이야기를 들었으니 ㅠㅜ~ 회사 생활이라는게 참 쉽지 않구나라는 생각. 녀석은 들어가면서 그랬다. 남의 돈 버는게 어디 쉽나요…

#2
지난번 블로그에 코드의 색깔을 찾아서라는 글에 문제를 냈었다. 몇 분이 답을 보내주었는데 모르는 분이 한 분 포함돼 있었다. 관심가져 주신게 고맙기도 하고 어떤 분인지 만나 보고 싶기도 해서 연락을 해서는 만났다. 만나서 통성명을 하고 인사를 하는데 큰 형님이셨다. 그러면서 이런 저런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게임 업계에 있다가 지금은 제조 쪽에서 프로그래밍을 하고 계시다고 했다. 재밌는 문제 푸는 걸 좋아해서 한번 해봤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 중간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그래도 연구소장 정도 되니까 블로그에 코드 색깔 스크립트나 짜서 올리고 하는 여유가 있는 것 같다고. 직원들 입장에서는 그런 걸 할 시간이 없지 않겠냐는 이야기. 형의 그 이야기를 나도 반박하지는 않았다. 내가 봐도 우리 회사 직원들은 바빠서 그런 일을 할만한 시간이 없다고 생각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도 회사 직원 입장에서는 바빠서 아마 그럴 시간은 없는게 맞는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3
비오는 오후 사무실에 의자에 앉아서 창밖에 내리는 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커피를 한 잔 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여유란 것도 어떻게 보면 빈익빈 부익부가 심할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 나는 사실 여유가 많은 편이다. 커피를 한 잔 하고 싶으면 쉴 수도 있고, 코드 쓰다가 머리 아프면 잠시 나갔다 올 수 도 있고, 집에서 일하고 싶으면 집에서 일한다. 그러니 어쩌면 직원 입장인 친구들보다는 새로운 것들이나 문제점을 찾기가 훨씬 더 쉬운 위치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일들이 쌓이면서 내가 훨씬 더 여유를 많이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게 되고 말이다. 결국 선순환과 악순환인 두 개의 피드백 루프가 있다면 어쩌다보니 난 재수가 좋아서 선순환의 피드백 루프에 들었던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할 시간도 없는데 go, rust, f# 같은 언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는 그 친구들에게는 어쩌면 밥이 없으면 빵을 먹으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았을까? 내리는 빗방울만큼 생각도 많아지는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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