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열정사이

@codemaru · February 08, 2011 · 4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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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타 쥰세이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그 눈동자도, 그 목소리도, 불현듯 고독의 그림자가 어리는 그 웃음진 얼굴도, 만약 어딘가에서 쥰세이가 죽는다면, 나는 아마 알 수 있으리라. 아무리 먼 곳이라도, 두 번 다시 만나는 일이 없어도…

사람이 있을 곳이란, 누군가의 가슴 속밖에 없는 것이란다.

우리는 세월의 어둠 속을 손으로 더듬어 서로의 윤곽을 확인하려 했다. 만남이라는 기세를 타고 우리의 열정에는 불이 붙고, 냉정에는 물이 뿌려졌다.

고작 사흘로, 당연한 일이지만 통속 멜로 드라마처럼 우리는 8년의 공백을 복원시킬 수 없었다. 두 사람은 같은 그림을 바라보면서도 제각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을 따름이다. 어느 쪽에도 그림을 복원시킬 만한 열정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움만 간직한 냉정한 동창회와도 같았다.

결국 냉정이 이겼다. 구내를 헤매고 다니던 비둘기가 이제 겨우 밖으로 빠져 나갔다. 낮게 한숨을 토해 냈다. 눈 깜짝할 사이였다. 반추할 만한 추억도 남기지 않고 막은 내렸다. 이런 결말을 위해 8년이란 세월을 기다렸던가. 온몸에서 힘이 빠져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죽음과도 같았다.

– 냉정과 열정 사이 중에서

언젠가 누구와 멜랑꼴리한 이야기를 하던 중에 이 소설이 생각나서 다시 읽게 되었다. 에쿠니 가오리를 좋아해서 rosso편만 읽었었는데 내친김에 blu편도 사서 보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blu편이 더 좋았다. 읽는 내내 두 작가의 글빨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나 문장이 산뜻한지, ‘아~ 글 읽는 재미가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한 장 한 장을 넘겼다. 그 말랑말랑하고 달짝지근한 문장이란~ 훗~

책 내용은 그렇다. 헤어진 두 연인이 각자의 시간 동안을 서로의 관점에서 기술해 나가는 식이다. 쉽게 말하면 연인들끼리 하는 교환 일기장 정도 되겠다.

책을 다 읽고 덮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이란 우리가 했던 오래된 약속들, 잊혀진 기억들, 빛 바랜 추억들… 그리곤 그 후미지고 낡은 기억의 틈 사이를 들추어 본다. 그 속엔 아직도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 시절의 내 모습이 그대로 있는데 말이지… ㅋㅋ~

@codemaru
돌아보니 좋은 날도 있었고, 나쁜 날도 있었다. 그런 나의 모든 소소한 일상과 배움을 기록한다. 여기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한 개인의 관점이고 의견이다. 내가 속한 조직과는 1도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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