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호우시절

@codemaru · October 03, 2010 · 4 min read

홀로 자체 발광하고 있는 정우성. 이건 머 남자가 봐도. …

홀로 자체 발광하고 있는 정우성. 이건 머 남자가 봐도. …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영상, 원초적인 스토리, 저질스런 대사들로 가득한 요즘 영화 같지 않은 정말 멋진 영화입니다. 동하와 메이의 애틋한 재회가 너무 아름답게 보이더군요. 말도 못하고 서로 마음만 바라보는 그 둘 사이의 묘한 아득함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었나 봅니다. 엇갈린 추억, 못다한 말들, 지나친 배려, … 그런 일들로 누구나 데드락이 돼버린 연애사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잖아요. ㅎㅎ^^;;

Do you remember?<br>호우시절이네<br>두보의 시에 나오는 말이야<br>‘좋은 비는 때를 알고 알고 내린다’는 뜻이야<br>꽃이 펴서 봄이 오는 걸까 아니면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까

Do you remember?
호우시절이네
두보의 시에 나오는 말이야
‘좋은 비는 때를 알고 알고 내린다’는 뜻이야
꽃이 펴서 봄이 오는 걸까 아니면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걸까

그닥 영화 대사를 기억하는 편은 아닌데, 비를 피해 처마 밑에서 메이가 했던 저 대사는 영화가 끝나고도 계속 떠오릅니다. 그리고 메이가 저 장면에서 동하에게 건낸 한 마디, Do you remember?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면 저 대사의 출처인 두보의 시 전문이 나오는데, 참 운치가 느껴지는 시네욤.

봄 밤에 내리는 반가운 비

– 두보

좋은 비는 그 때를 알고 내리니

봄이 되어 내리네

이 밤 바람 따라 몰래 들어와

소리없이 만물을 적시고 있네

들길에는 구름이 드리워 어둑하고

강위에는 조각배 등불만 외로이 떠있네

새벽이 되어 붉게 반짝이는 곳을 보니

금관성(청두)이 온통 꽃으로 물들어 있구나

영화가 끝나고 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에서 비가 옵니다. 세차게 내리는 빗물을 메이가 그랬듯 손으로 받치고 있으니 ‘호우시절’같았던 추억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세상사에는 참 시기라는 것이 무시 못할 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피천득 선생님께서 아사코와의 인연을 두고 수필집에 적으셨던 그 말씀도 새록새록 머릿속을 파고드네요.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 인연, 피천득

배경이 된 영상도 너무 아름답습니다. 꼭 한 번 가보고 싶네요. 어쨌든 저에겐 간만에 정말 멋진 영화였습니다.

@codemaru
돌아보니 좋은 날도 있었고, 나쁜 날도 있었다. 그런 나의 모든 소소한 일상과 배움을 기록한다. 여기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한 개인의 관점이고 의견이다. 내가 속한 조직과는 1도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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