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Sep
2011
Posted in: 양피지
By    9 Comments

지식 근로자 관리의 어려움…


지식 근로자 관리의 어려움…
by 신영진(YoungJin Shin), codewiz at gmail.com, @codemaru, http://www.jiniya.net

#0.
예전에 회사 생활을 하다가 울었던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제법 열심히 일하는 프로그래머였는데, 한 날은 같은 팀원들끼리 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같이 게임을 하다가 유독 나만 혼이 난 것이었다. 웃긴 것은 내가 혼날 만한 하등의 상황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사실 혼난게 뭣같아서 울었다기 보다는 억울해서 울었다. 누가봐도 그건 아닌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느꼈다. 아 이거 x빠지게 열심히 일해봤자 하나도 소용없구나. 그 날로 그냥 쉬엄쉬엄 회사를 다녔다. 할 줄 아는 것도 남들이 못하면 못한다고 했고, 금방 할 수 있는 것도 개발팀에서 제일 못하는 사람 바로 위 정도로 일정을 맞췄다. 당연히 남들이 못잡는 버그는 나도 잡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해 관계가 끝나기가 무섭게 회사를 그만뒀다. 그런 회사에서 일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마음이 그랬다.

#1.
뛰어난 개발자의 딜레마라는 이야기가 있다. 뛰어난 개발자 A와 그저 그런 B가 있을 때 아주 어려운 과제 P가 주어진 상황이다. A는 2달을 놀다가 2주만에 P를 깔끔하게 해결했고, B는 3달 동안 x빠지게 밤새고 야근하고 다녔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했다. 이 때 보통 관리자는 A는 농땡이를 쳤다고 생각하고, B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과제가 너무 어려웠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결국 승진은 B가 한다는 서글픈 스토리다. 사실 내가 봐도 세상은 좀 그렇다. 특히 대기업 다니는 형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한다.

#2.
우리 회사에도 뛰어난 개발자들이 많이(?!) 있다. 난 그런 개발자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회사에 느끼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그런 감정을 느끼면 우리는 최고의 개발자가 아니라 그냥 타이핑 하는 기계 하나를 더 가진 것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지식 근로자에게 감정은 중요하고, 어렵지만 공정한 보상은 중요하다. 그런데 6살 어린 아이도 똑바로 할 것 같은 이 단순한 “공정한 보상”이라는 것이 실상은 굉장히 어렵다.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성과를 공정하게 판단한다는 그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려운 문제라는 점이다. 성과를 공정하게 판단하기 위해서는 과제의 난이도 x와 개인의 역량 y를 정확하게 측정하는 것이 가능해야 하는데, 이걸 측정한다는 것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제의 난이도가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누구도 그 문제가 얼마나 해결하기 어려운지 판단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개인의 역랑 y도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그 사람이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일 자체가 쉽지 않다. 즉, 지식 근로자의 성과를 측정한다는 자체가 애초에 넌센스라는 이야기다.

물론 이러한 개념적인 어려움 외에도 이 문제를 힘들게 만드는 점이 있다. 바로 감정이다. 평가라는 것이 주관을 넘어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열손가락 깨물어서 안아픈 손가락이 없다고 하지만 무던 더 아픈 손가락이 있기 마련이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평가하면서 이러한 감정을 배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런 연유로 그렇게도 많은 직장인들이 처세에 몰두하는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이 문제를 NP 컴플리트로 만드는 일등 공신은 다름아닌 간신들이다. 능력 없는 사람들은 보통 처세에 능하다. 그도 그럴 것이 먹고 살 방법이 그 길 밖에는 없기에 그 쪽 분야에 퍽이나 신경을 쓴다. 그러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생활부터 시작해서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 들먹이면서 흠집을 낸다. 안타깝게도 아래 직원이 하고 있는 일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의 관리자가 아니라면 이 흠집은 아주 그럴싸해 보인다. 그리고는 다음날 거위의 배는 갈라진다.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말 한마디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사라지는 것이다. 애처로운 현실이다.

#3.
그렇다면 거위의 배를 가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핵심 가치에 집중해야 한다. 세상에 영구 기관은 없고 만병통치약도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장점도 있고, 몇 가지 정도는 단점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 단점이라는 것이 회사에서 그 사람에게 요구해야 하는 핵심 가치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는 신경쓰지 않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싱거워 보이는 이 사소한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뛰어난 인력으로 넘쳐나는 대기업은 이런 고민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는 아주 중요한 나사 하나쯤 빠져도 그 자리를 메워줄려고 대기하는 수많은 부품들이 있을테니깐 말이다. 하지만 작은 기업들에게는 사람이 전부다. 특히나 근속 횟수가 많고 히스토리를 아는 직원들의 가치란 상상을 초월한다. 그래서 더욱 그들을 보호해야 하고, 그들이 공정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들이 공정한 보상을 받지 못해 단순 타이핑 기계로 전락하거나 조금이라도 더 나은 보상을 받기 위해 능력 개발보다 처세에 집중할 때 회사 발전은 그날로 끝난 거나 다름 없는 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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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ttp://user.chol.com/~mirjini 이광진

    #1 에서 “~~보통 관리자는 A는 농땡이를 쳤다고 생각하고, B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과제가 너무 어려웠다고 판단한다는 것이다.~~” 이건 맞는 거 아닐까 하는데…

    평가를 할 때 그 사람의 역량과 성과를 따로 평가를 하는데.. (우리 회사는 그렇다는…)

    A 는 역량은 ‘S’ 인데 성과는 ‘B’ 인 것이고 B 는 역량은 ‘C’ 인데 성과가 ‘B’ 인 경우라 할 수 있겠죠… 그러면 당연히 A 는 찬밥이 되는 거일 듯…

    A 는 정말 똑똑한 멍청이라고 생각된다는… 1~2주 놀고 1주일 빡세게 해서 일을 마무리하는게 정말 좋은 모습이지 않을까 생각되는데…

    난 처세니 대기업 마인드니 뭐 이딴건 잘 모르지만 내 아랫사람이 A, B 둘이 있다면 B 를 더 아낄 듯… 자신의 능력은 드러낼 때에만 발현되는 게 아닐까…

  • codewiz

    이광진 // 형님. 잘 지내시죵? ㅎㅎ

    #1 이야기는 대비를 위해 과장된 표현을 좀 사용한 부분입니다. 사실 A가 실제로 놀았다면 회사 생활에 좋은 태도는 아니겠지요. 제가 놀았다고 표현한 부분은 B와 달리 초과 근무를 하지 않았다는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x빠지게 일했다고 표현한 B는 그런 암묵적인 합의의 야근으로 시간만 축내며 엉덩이를 회사에 오래 붙이고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었습니다.

    전 A에게 손을 좀 들어주고 싶은 입장인데요. 이유는 이렇습니다.

    우선 열심히 하는 사람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즘 같은 세상에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이 더 이상할 지경이죠. 그만큼 다들 열심히 하는 반면에, 잘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즉, 노력과 능력의 우선 순위를 고려한다면 전 희소성 때문에라도 능력을 택하겠다는 주의입니다.

    둘째는 제가 일전에 썼던 “고음내기”라는 글에서도 언급했던 내용인데, 제가 일을 하면서 겪었던 많은 어려운 문제들이 대부분 할 수 있다, 없다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해결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되는 문제들이 대부분이었다는 것이죠. 즉, 이런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열심히 일하는 100명보다 그걸 해낼 수 있는 한 명이 절실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끝으로 마지막 이유는 저희 같이 영세한 회사의 입장에서는 노력하는 사람을 키우기 보다는 능력있는 사람을 대우해주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여건이 된다면 노력하면서 잘하는 사람을 뽑는 것이 최선임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 서상현

    Re: 이광진: A는 문제를 해결했고 B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는데 왜 성과가 둘 다 ‘B’인가요?

  • http://user.chol.com/~mirjini 이광진

    @서상현 : 제가 위에 적어놓질 못했는데 둘 다 문제를 해결했다고 가정했을 때 그냥 객관적으로 봤을 때 B 급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제라고 이해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영진 : 그냥저냥 잘 지내는 것 같다.. ^^ 어느 회사나 능력있는 사람이 인정을 받아야겠지. 그렇지 못한 곳이라면 과감히 박차고 나오는게 맞는 것 같다… (이게 말처럼 쉽진 않지만…ㅋ)

  • http://paranmagic.tistory.com 김범준

    좋은 얘기 잘 읽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네요. ^^

  • http://iam-hs.com HS

    잘 보고 갑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글이네용~~ ^^
    날씨 서늘해졌는데~ 건강 유의하세용~~ :)

  • codewiz

    이광진 // 그러게용. 어릴 때는 객기에 잘도 때려쳤는데, 나이드니 그것도 쉽진 않네요 ㅋㅋㅋㅋ~

    김범준 // 감사합니당. ㅎ^^;;

    HS // 현승씨도 잘 지내죵? 쌀쌀한데 감기 조심하세용 훗~

  • http://luxtella.blogspot.com dshwang

    확실히 한국은 B를 훨씬 선호하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럴듯한 소프트웨어는 못만들면서 다같이 야근하는걸지도.. 저는 북유럽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인데 아무도 사람의 근태에 대해 신경쓰지 않습니다. 몇일 안보이는 사람도 수두룩합니다. 집에서 일한다네요. 저는 한국태생이라 집에서 일할수없는 멘탈을 가지고 있어서 이해는 안되지만.
    메니져는 엔지니어의 역량을 평가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동료 엔지니어는 가능하죠. 그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코드에 어느정도 드러나니깐요. 그래서 아첨꾼이 동료평가까지 왜곡하는건 굉장히 힘듭니다. 같은 일을 했을때 인간성 좋은 사람이 평가를 잘받게 되는 함정이 있지만, 그것은 팀워크 관점에서 더 좋은 사람이라는 근거가 될 수는 있겠죠.
    말이 주저리 주저리 길어졌는데, 적어도 제가 있는 곳에서는 A가 훨씬 살아남기 좋습니다. 애쵸에 동료가 얼마나 많이 일하는지 관심이 없으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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