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Jun
2015
Posted in: 양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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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트(SSAT) 수학 문제에 부쳐, 2007


싸트(SSAT) 수학 문제에 부쳐, 2007
by 신영진(YoungJin Shin), codewiz at gmail.com, @codemaru, http://www.jiniya.net

오늘은 친구 녀석이 국민은행 서류 시험을 치는 날이다. 뭐 논술, 인성, 적성 시험을 친다고 했다. 아침 일찍 가는게 안돼 보여서 고사장까지 바래다 주었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옆에 앉아서 공부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었다.


문제의 훼이크 그림

적성 시험 공부를 하고 있었다. 언어, 수리 영역을 시험본다고 한다. 그러면서 SSAT 책의 수리 영역 부분을 열심히 풀고 있었다. 그러다 대뜸 ‘높이가 8cm인 원뿔의 부피를 구하시오’라는 중학교 수학책에나 나올법한 문제를 물어왔다. 그림은 위에 있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난 친절하게 부피는 밑넓이와 높이를 알아야 구할 수 있으니까 밑넓이를 구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밑면을 이루는 원의 반지름을 구해야 한다고 가르쳐 줬다.

2파이 * 8 * 216/360 = 2파이 * r
이란 식을 세워 두고 열심히 계산을 해나갔다.
그런데 왠지 숫자들이 나의 식을 거부하는 느낌이 들었다.
뭔가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친구는 식을 쳐다 보더니 그건 자기도 알겠다는 듯이 머라한다. 그런데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답을 보니 어라 216/360 = r/10이라고 계산을 하고 있었다. 친구가 묻는다 10은 어디서 나왔지? 나는 그림을 쳐다봤다. 도저히 10이 나올 구녕이라고는 없어 보였다. 사실 쩜 굉장히 쪽팔렸다. 명색히 공과 대학 교육 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내가 이런 중딩 문제조차 못풀고 있는 것이었다. 시험 시간이 임박해서 그냥 대충 풀라고 하고는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 길에 나는 문제를 다시 머릿속에 넣어 보았다. 그러면서 아까는 쳐다보지 않았던 문제를 다시 곱씹었다. 높이가 8cm인 원뿔의 부피, 그런데 모선의 길이도 8cm, 그걸로 원뿔을 만들어 보려고 했다. 뭔가 말이 안됨을 이내 알 수 있었다. 모선과 높이가 모두 8cm면 직각 삼각형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제서야 그림이 완전 훼이크 였음을 알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다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식을 다시 세워 계산을 해보았다. 그랬더니 당연하게 모선의 길이가 10cm가 나온다. 계산은 연습장에 깨끗하게 하고, 문제의 조건을 꼼꼼하게 점검하라고 밥먹듯이 말했던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1. 답지의 함정
풀이 과정을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처음부터 내가 제대로 된 방법을 가르쳐 줬다고 해도 친구는 믿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답지는 한 줄로 계산하고, 문제엔 모선의 길이를 8cm라고 적어 두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내가 원뿔을 그리고 높이와 모선과 밑면의 반지름이 이루는 삼각형을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이차 방정식을 적는 과정만 보고도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을 하고는, 나에게 ‘뭔가 이상한 것 같아. 더 쉬운 방법이 있을꺼야’라고 말했을 것이다. 물론 이건 다른 문제를 가르쳐 줬을 때의 반응을 통해서 추측해본 것이다.

남의 일 같지만 우리는 사실 굉장히 자주 이런 실수를 저지른다. 답지는 무엇인가? 권위이다. 문제를 풀고 있는 학생에게 답지는 최고의 권위의 대상인 셈이다. 설령 답지가 틀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가르치는 사람이 무능한 것이지, 답지가 이상한 것이 아닌게 된다. 일상 생활에서도 우리는 굉장히 권위에 의존해서 많은 일들을 판단한다. TV에 나와서 저명한 의사가 비타민이 몸에 좋다고 하면, 사람들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비타민을 복용한다. 2~3년에 지나고 TV에 다른 저명한 의사가 나와서 과도한 비타민 섭취가 몸의 면역력을 떨어뜨린다고 하면 다시 생각도 해보지 않고 복용을 중단한다. 왜 그런지 생각조차 해보지 않는 것이다.

똑똑한 개발자들도 이런 실수를 자주 저지른다. 선배 개발자에게 A란 작업을 구현하는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고 물어본 신입 개발자가 있다. 선배 개발자는 자신이 사용하고 있던 코드 묶음 중에 일부를 떼어 해당 기능을 구현하는 함수의 코드를 준다. 신입 개발자는 그 코드를 보면서 이런 간단한 일을 하는데 이 코드는 너무 복잡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인터넷을 뒤진다. 그리고는 그런 일에 쓸수 있는 SomeAPI란 함수를 찾게 된다. 신입 개발자에게 MSDN이나 MS의 권위는 하늘과도 같다. 그는 선배 개발자의 코드는 쓰지 않고 SomeAPI를 사용한다. 하지만 그 코드가 릴리즈 되어 나가고 조금만 지나면 그는 큰 후회를 하게된다. 그 API는 심각한 결함을 가지고 있거나, 특정 운영체제를 지원하지 않거나, 특정 시스템에서 오동작하는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선배가 바보가 아닌 이상 잘 동작하는 API가 이미 존재하는데 만들었을 새로 확률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권위에 집착하는 과정이 심화되면 궁극에는 ‘A란 책에에서는 …’, ‘B란 사람이 …’, ‘C란 프로그램 소스 코드가 …’, ‘인터넷을 찾아보니 …’와 같은 이야기를 자주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 곳에서 찾은 정보를 맹목적으로 맹신한다. 하지만 지식의 옳고 그름 앞에서 권위는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그 권위가 그 믿음만큼이나 종종 더 크게 잘못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납득할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정답은 존재하는가?

여기 뉴턴이 이해한 물리학이 있다. 난 그걸 내가 해석한대로 가르칠 생각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버전으로 그 내용을 이해하면 된다. 여기에 정답이란 없다. 뉴턴이 잘못된 생각을 했을 수도 있고, 우리 모두가 엉뚱한 착각에 빠졌을 수도 있다. 의문이 있다면 가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권위 앞에 주눅들 필요 없다. 그래야 우리 후배들은 더 정확한 물리학을 배울 수 있게 된다.

40줄에 담배와 당구를 배우셨다는 어떤 물리학 교수님

— 2007.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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