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Jun
2015
Posted in: 양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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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빼미형 인간


올빼미형 인간
by 신영진(YoungJin Shin), codewiz at gmail.com, @codemaru, http://www.jiniya.net

고백하건데 나는 올빼미형 인간이다. 난 이제껏 내가 그냥 태어날 때 부터 올빼미형 인간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올빼미형 인간이 된 것은 다름 아닌 진화에 의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올빼미가 된 사연은 다름아닌 컴퓨터 때문이다. 난 14살 때 처음으로 내 컴퓨터를 가지게 됐다. 그때 내가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다음 밖에 없었다. 그렇게 학창 시절을 보내고는 대학을 들어갔다. 이제는 더 올빼미가 될 수 밖에 없다. 일단 낮 시간은 여자 친구도 만나야 하고 엄마가 청소도 하고 시끄럽다. 집중이 되지 않으니 일을 할 수가 없다. 자연스럽게 내가 컴퓨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고스란히 새벽 시간 밖에는 없다. 여친느님도 엄마도 잠드는 바로 그 시간, 황금 시간. ㅋㅋ~ 자연스럽게 나는 새벽에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10년이 넘는 시간을 일을 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올빼미가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회사를 와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회사의 낮 시간은 사실 진득하게 코딩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니다. 특히 보안 업체의 하루는 전쟁터와 같다. 여기저기 해킹툴이 나오고 업데이트 요청이 있고, 사용자 로그가 접수되고, 업데이트가 있고, … 한마디로 헬이다. 무한 인터럽트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나마 우리 회사는 연구실이 분리되어 있어서 소란스럽지는 않은데 그래도 안에 사람이 많이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집중하기는 힘들다.

각종 소음들. 한번은 기계식 키보드를 개발자가 샀길래 집에 가서 쓰라고 돌려보낸 적이 있다. 또각 또각 하는 소리에 당췌 코딩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내가 쓸 때에는 기계식 키보드를 사용하는 걸 좋아한다. 그 손맛과 함께 그 소리마저 뭔가 경쾌하게 들리는 법이다. 요즘은 핸드폰을 두고 가는 개발자들이 있어서 전쟁 중이다. 자리에 두고 갔을 때 전화가 오면 다른 사람들이 피곤하니 좀 들고 다니라고 해도 당췌 들고 다니질 않는다. 물론 다 그런건 아니고 말 안듣는 한 명이 있다. 물론 난 상황이 좀 나은 편인데 회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내가 컨트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내가 대장이다. 그렇게 모든 변수들을 통제해도 사실 낮 시간은 코딩을 진득하게 하거나 디버깅을 하기에는 소란스럽다. 시끄럽고, 인터럽트가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회사에서도 나는 새벽에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0시에서 7시. 내가 가장 많은 코드를 작성한 시간이고, 가장 많은 버그를 잡은 시간이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레거시 코드가 도저히 관리가 되지 않아서 전체를 새롭게 작성한 일이 있었다. 세명이 한 일주일 작업했는데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코드가 크지는 않았다. 다해서 3만 라인이 조금 안되는 컴포넌트였다. 그렇게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지지부진 하다 일주일이 지나고 안되겠다 싶어서 작성하던 코드를 다 버리고 밤에 혼자서 작업을 새로 했다. 그러자 이틀만에 동작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밤시간 이틀을 말한다. 그때 느꼈다. 아. 내가 이래서 올빼미가 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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