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나…

@codemaru · December 13, 2011 · 15 min read

#0

일요일 저녁. 술을 한 잔 하고는 집으로 들어왔다. 11시쯤 됐던가? 이른 시간이었지만 피곤했는지 집에 와서는 그 길로 잠들어 버렸다. 일어나니 새벽 3시. 한참을 고민했다. 이상하게 안가던 떼목욕이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4시쯤이 돼서는 기어코 목욕 가방을 챙기고 길을 나섰다. 4시부터 5시까지 탕을 청소한다는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들어가서는 신나게 목욕을 했다. 간만에 탕에 몸을 담그고 떼를 밀고나니 한 결 머리가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 아빠는 목욕을 끝내곤 곧잘 삼육두유를 마셨다. 나도 그런 그의 취향을 물려받아 떼목욕을 하고 나면 으레 삼육두유를 하나씩 먹곤 했다. 그날도 냉장고를 뚫어져라 뒤졌다. 하지만 삼육두유는 없었다. 순두유를 마셨다.

백팩을 가지러 회사에 들렸다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과제 완료 발표가 있었고, 다음주 토요일에는 엄마 CT 촬영이 있었다. 보고서도 써야 했고 집 청소도 해야 했다. 귀찮은 생각이 들어서 그냥 다 잊고 침대에 몸을 뉘였다. 그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엄마다. 전화를 받고는 엄마, 하는데 반대편에서 “느그 아버지가…”하는 광란에 빠진 한 마리 짐승의 절규만 들리고는 전화가 끊어졌다. 다시 전화를 하려는데 작은 누나에게 전화가 먼저 왔다. 울고불고 정신 없는 상태에서 누나는 나에게 재차 아버지 부고를 전했다.

멍했다. 처음에는 마치 이 모든 사실이 농담처럼 느껴졌다. 그것도 잠시 주섬주섬 아무 옷이나 챙겨 입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나왔다. 택시를 타고는 공항으로 향했다. 눈물이 났다. 너무 슬프면 눈물도 나지 않는다고 했는데 내 평생에 그렇게 구슬프게 모르는 사람 앞에서 처절하게 울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이상한 듯 쳐다보는 택시 아저씨의 시선도 무시한 채 엉엉 울었다. 너무 슬펐다. 뭔지 모를 감정이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고, 내 심장에서는 뭔가 대단한 덩어리가 빠져나간 느낌이었다.

그의 죽음은 나에게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갑작스럽게 차가운 바람처럼 다가왔다.

#1

부산에서 친구 결혼식이 있던 날이었다. 역시나 난 늦잠을 잤고 늘 그렇듯이 부리나케 서울역으로 가서는 아무 기차나 올라탔다. 입석이었다. 11월임에도 날씨가 무던 덥던 날이었다. 부산 양정에서 결혼식이 있었는데 양정에 도착하자 정말 애매모호한 시간만 남았다. 집에 가서 정장을 갈아입고 오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해 그냥 근처 커피숍을 찾아 들어갔다. 부산 날씨는 그야말로 7월 장마철 날씨였다. 습하고, 더웠고, 불쾌지수는 상상을 초월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친구들과 술을 한 잔 하고는 저녁쯤 본가 기습을 단행했다. 동래부터 온천천을 호기롭게 걸어가며 엄마한테 전화를 건다. 별 일 없냐는 나의 질문. 엄마는 대뜸 아빠가 입원했다가 어제 퇴원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종합 검진을 받았는데 장기들 기능이 떨어져서 그렇지 관리만 잘하면 큰 문제는 없다는 이야기를 의사가 했다고 전해준다. 그러다 배터리가 다돼서 전화가 끊겼다.

집에 도착했다. 1302호. 내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무렵부터 이 곳에 살았다. 이제는 익숙하지 않은 비밀번호를 누르고는 들어가면서 신나게 소리친다. 사랑하는 아들이 왔노라고. 쇼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던 아빠는 늘 그랬듯이, “영지~ 왔나?”라는 말을 하며 아주 반갑게 맞아 주셨다.

다음날 아침. 아빠는 목욕을 가고 싶어 했다. 그렇게 엄마가 가라고 할 때는 가지 않다가 교통사고가 난 불편한 발을 이끌고 기어코 목욕을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신 것이었다. 고집을 이기지 못한 엄마가 나에게 같이 가라고 했다. 그러겠다고. 그렇게 집을 나와서는 거의 20년 만에 처음으로 목욕탕 가는 길을 함께 걸었다. 하필 옆 상가에 목욕탕이 없어져서 먼 길을 걸어서 가야 했다. 비는 여전히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5m를 가다가 잠시 앉아 쉬고, 또 열 걸음을 가다 쉬곤 했다. 그러기를 5-6회 기어코 아빠는 다리 한 가운데서 주저 앉았다. 저혈당이 온 것이다. 평소 가지고 다니시던 사탕이 없어 부리나케 근처 구멍가게에서 사탕을 사왔다. 그러고도 수습이 되질 않았다. 결국 엄마를 불러서 차에 태워서 집으로 다시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집에 와서는 한참 동안 아빠를 타박한다. “왜 엄마 말을 듣지 않느냐?”부터 시작해서 갖은 타박을 다했다. 아픈 것도 야속한데 하나 있는 아들이 그랬으니 그 심정이 오죽했을까? 그런데도 아빠는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아들이 자신을 살렸다는 이야기를 하시며 해맑게 웃으셨다.

이 장면이 내가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이다. 물론 이렇게 되리란 걸 상상도 못했지만 그렇게 돼 버렸다. 야속하게도 말이다. 물론 내가 그의 마음을 야속하게 한 것에 비하면 이 일은 아무 것도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너무 슬프고, 애통하고, 비통하고, 원통하다. 또 그가 너무 원망스럽다. 그는 평생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았던 나를 한번도 원망하지 않았지만, 난 단 한 차례 그가 나의 바램을 꺾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원망한다는 사실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이제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다. 목소리도 들을 수 없으며, 체취를 느낄 수도 없다. ‘영원’이란 단어가 허용된다면 단 한 곳, 바로 이 상황에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났다.

#2

2년 전 크리스마스였다. 여자친구와 파르나서스 박사의 상상극장이라는 내 생애 최악의 영화로 꼽을 만한 영화를 이브 날에 보고는 술을 마시며 밤을 보냈다. 그리곤 크리스마스 날 오후에 눈을 떴을 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아빠가 쓰러져서 대학병원에 입원했다는 전화였다. 부리나케 비행기를 예약하고는 전화 받고 한 시간도 안되어서 공항에서 비행기를 탔다. 참 시트콤같은 크리스마스였다.

택시를 타고 도착한 대학병원. 엄마와 작은 누나가 있었고, 머지 않아서 큰 누나도 왔다. 아빠는 의식이 없었다. 우리는 의식이 없는 아빠를 쳐다보면서 황당하게 크리스마스 당일에 가족이 다 모인 게 정말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실로 큰 누나가 20살이 된 이후로는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마 올해도 아빠가 스러지지 않았다면 우리는 모두 따로 각자의 크리스마스를 보냈을 것이다.

병원에서는 아버지께서 돌아가실 수도 있다는 말을 하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이야기를 했다. 하지만 아빠는 우리의 바램을 저버리지 않고 다시 일어났다. 그가 깨어났을 때 난 정말 우리 아빠라는 생각을 했다. 그가 깨어나고 처음 한 말이 저기 간호사가 이쁘다면서 나보고 꼬셔보라는 농이었기 때문이었다. 난 아빠가 농을 하는 걸 보니 다 나은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렇게 우리는 그 해 크리스마스를 병원에서 함께 보냈다. 작은 누나는 다음 해 아빠가 퇴원하기가 무섭게 그때 병문안을 왔던 남자와 결혼을 했다. 돌이켜보니 누나 나이도 있겠지만 아빠의 건강 때문에 결혼식이 더 빨리 진행됐던 것 같다.

#3

장례식장, 상주 자리에 앉아서 그의 영정 사진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지난 2년여의 시간이 스펙트럼처럼 머릿속을 뒤지고 돌아다닌다. 신성태라는 아빠 이름 앞에 붙은 ‘고’라는 한자를 볼 때면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그 한 글자가 아빠의 영면을 부인하는 나에게 그의 죽음을 계속 강요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 모든 슬픔과 아픔에도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고 장례식도 끝이 났다. 한 평생을 싸웠던 엄마는 장례식이 끝나고 그래도 그는 따뜻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생전 처음으로 자식들에게 들려줬다. 엄마의 타박도 그는 항상 묵묵히 받아 줬으며, 야망을 가진 한 평생을 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그는 살아생전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착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모두는 눈물을 훔쳤다.

#4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이 다음에 무슨 일이 닥쳐올지 알 수 있다면

물이 막혀 넘치는 주방, 옻이 올라 가려운 피부

그리고 죽일 듯이 싸우던 순간들이

앞으로 다가올 일에 비하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도와줄 수 있을까?

– Grey’s Anatomy S08E09

사람들은 늘 어리석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지만 큰 착각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화장실이 고장 난 통에 물바다가 된 주방에서 밤새 고생했던 날, 보일러가 갑작스레 고장 난 월요일 아침, 코딩할 게 너무 많다고 투덜거렸던 새벽, 쓰기 싫은 보고서에 치여서 한숨 쉬던 날들을 돌아 본다. 힘들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들 조차도 지금 생각해보니 정말 아름다운 시간이 아니었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단지 그와 내가 같은 하늘 아래에서 함께 숨쉬고 있다는 그 사실, 아주 사소하게 생각했지만 전혀 사소하지 않았던 그 사실 하나만으로 말이다.

우리는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린 후에야 그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는다.

똑같은 실수를 두 번 하지는 말자.

절대로!!!

@codemaru
돌아보니 좋은 날도 있었고, 나쁜 날도 있었다. 그런 나의 모든 소소한 일상과 배움을 기록한다. 여기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한 개인의 관점이고 의견이다. 내가 속한 조직과는 1도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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