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

@codemaru · March 19, 2010 · 8 min read

밑에 jhyoon77님 블로그를 보다가 “하고 싶은 일, 돈 버는 일”이란 글이 있길래 읽고 생각나는 바가 있어서 몇 자 끄적여 봅니다.

知之者는 不如好之者요 好之者는 不如樂之者라.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논어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죠. 이 이야기가 요즘은 너무 많이 퍼져서 너도나도 자신이 즐길 수 있는 일을 찾으려 합니다. 저도 예전부터 지금까지 이 말을 정말 좋아했고, 지금도 제가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려고 하는 입장입니다.

종종 주변 사람들이 물어봅니다. 어떤 길을 가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다고 말입니다. 적당히 대기업을 취직해서 돈을 벌면서 살 수도 있고,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볼 수도 있는 입장에 있다고 말입니다. 예전 같으면 저는 100%, 당신이 좋아하는 일, 내지는 가장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그런 저의 입장은 바뀌었습니다.

예전에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즐기면 자연스럽게 잘해진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정말 진짜 100% 사실이 아닙니다. 제가 스타크래프트를 참 좋아합니다. 98년부터 00년 까지는 정말 미친 듯이 했죠. 임요환 선수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슷하게는 했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똑같은 시간을 투자하고 똑같이 한다고 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더군요.

“행복의 조건”이라는 책을 보면 나이가 들면서 행복해 지려면 이루어야 하는 과업 중의 하나로 생산성을 꼽습니다. 정말 자본주의스러운 항목이 아닐 수 없죠. 그런데 이 더러운 자본주의 세상에서는 생산성이 정말 중요합니다. 생산성이 뭡니까? 맞습니다. 동일한 시간을 투자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결과물입니다. 임요환 선수는 3시간만 연습하면 마린 한 마리로 럴커를 잡습니다. 그런데 전 백날을 연습해도 안되는 겁니다. 그게 생산성의 차이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생산성이 나오지 않으면 참 사람 비참해지는 건 시간 문제입니다.

재미가 있는 일을 하는 것, 자신이 즐길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은 정말 좋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번다는 것은 정말 최고의 행운이죠. 하지만 적어도 돈을 벌려면 기본적인 생산성이 받쳐주어야 합니다. 남들 다 한 시간만 하면 되는 것을 자신은 정말 좋아하지만 열 시간 해야 한다면 그건 생산성이 없는 축에 속하는 거겠죠.

그리고 꼭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게 가장 좋다는 생각도 얼마 정도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봅니다. 자신의 생산성이 극치를 이루는 부분이 좋아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거든요. 예를 들면 이런 친구들이 있습니다. 코딩 정말 쩔게 잘합니다. 두 달하면 아이온 같은 게임을 혼자 만든다고 해 봅니다(물론 가상입니다). 그런데 코딩 하는 것을 하나도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귀찮고 지루하고 짜증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너무 작위적이라 생각하시겠지만 주변에 찾아보면 한두 명쯤은 있을 겁니다. 이런 친구들이 제일 좋아하는 분야가 보통 주식이더군요. 어쨌든 이러나 저라나 코딩이라는 작업이 생산성이 나온다면 돈은 그 일을 해서 벌고 남는 시간에 자신이 즐길만한 일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겁니다. 굳이 꼭 직업이라는 것이 소명 의식이 있어야 하고, 철저한 직업 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제는 좀 맞지 않다라고 생각됩니다. 어차피 평생 직장, 직업이라는 것도 이제는 소위 시대에 조금은 뒤떨어진 개념이니깐요.

한비야 아주머니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못 버는 것”을 꽃놀이 패라고 했는데, 저는 망패라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못 버는 것”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게”될 확률 보다는 “좋아하는 일이 싫어질” 확률이 훨씬 더 높기 때문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꽃놀이패는 “잘하는 일 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남는 시간에는 편한 마음으로 좋아하는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 프로슈머라는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그리고 그 남는 시간에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대박쳐서 그걸 전업으로 삼기도 하구요. 어쨌든 돈은 생산성이 나오는 곳에서 벌어야 합니다. 그게 자본주의 사회란 곳입니다.

이건 좀 여담이지만 이런 부분에 있어서 개발자는 정말 복 받은 직업 중의 하나입니다. 조엘 아저씨 말처럼 다른 직업에 비해서 이 둘이 일치할 확률이 정말 말도안되게 높기 때문이죠. 누가 의사라는 직업을 좋아서 시작하겠습니까? 하다보니 좋아질 수는 있어도 해보고 재미있으니까 그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맛배기가 없죠. 그런데 프로그래머라는 직업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좋아서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죠. 굉장히 중요한 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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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ma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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