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를 안 가지면 시간은 언제나 없지~

@codemaru · April 16, 2013 · 4 min read

인터폰 소리에 깨어난다. 이 시간에 누구지? 회사 직원이다. 자꾸 POC를 가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는 그를 돌려 보내고는 씻고 금방 나가겠다고 했다. 면도도 하는 둥 마는 둥 머리에 물칠만 하고 밖으로 나갔다. 밥 먹을 시간도 없어서 서브웨이 샌드위치 하나로 택시에 올라탔다. 왜 갑자기 POC에 가야 하는지도 모른체…

꼭 10년 전이었다. 그 당시 내가 일했던 회사에는 BMT가 많았다. 으레 BMT가 그렇듯 우리는 전혀 없던 기능을 전 날 무리하게 구현하거나, 크로스 해킹을 위해서 경쟁사 제품을 무력화 시키면서 밤을 보내곤 했다. 사실 BMT에는 직접 참여도 하지 않는 말단 사원이라 난 나에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됐었다. 다음날 BMT 당일인데 참석해서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하는 실장님이 연락이 안 되는 상황. 급기야 아파트로 찾아 나섰다. 그 장면이 머릿속에서 오버랩 되면서… 나를 찾아 왔던 직원도 십 년 후에는 어디선가 누군가 인터폰으로 깨우는 소리에 일어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얼마 전에 근처 회사에 다니는 학교 후배 녀석이 저녁에 전화를 해 왔다. 시간 있냐는 질문에 당연히 있다고 대답했는데 그 녀석이 정말 신기하다고 했다. 내가 안 바쁘다고 대답한게 한참만이라는 반응이었다. 그 때 머리를 엄청 큰 해머로 두드려 맞는 느낌이 들었다. 아, 내가 뭔가 아주 심하게 잘못 살고 있구나. 후배 녀석과 커피 한 잔 마실 여유도 없이 사는게 내가 원한 삶은 아니었는데 말이지. 무슨 일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 반성했다.

POC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택시 안. 일정을 묻는 전화가 여기 저기서 쏟아진다. 다음주까지 해드릴께요. 다음주 수요일까지 드려도 될까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다음주에 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지난 주에 다음주에 구현해 준다고 했던 기능들이 생각났다. 오늘이 금요일인데. 어쩌면 난 다음주에 살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여유를 가지자. 조급한 마음만 가지고 일이 빨리 끝나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어차피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리 죽도록 중요한 일도, 미칠듯이 급한 일도 없다. 쉼표와 빈칸, 그리고 여백이 좀 필요하다. 바람처럼 왔다가 먼지처럼 가는 게 인생사 아니던가 ㅋ~

Merovingian

Yes, of course, who has time? Who has time?

But then if we do not ever take time, how can we ever have time?

하지만 여유를 안 가지만 시간은 언제나 없지

– 매트릭스2 리로디드,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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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maru
돌아보니 좋은 날도 있었고, 나쁜 날도 있었다. 그런 나의 모든 소소한 일상과 배움을 기록한다. 여기에 기록된 모든 내용은 한 개인의 관점이고 의견이다. 내가 속한 조직과는 1도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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